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문화사적지에는 그에 걸맞는 지방의 환경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의 경우 경주라는 문화사적의 보고(寶庫)는 그에 걸맞는 역사적 배경과 지리적 배경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본고에서는 돈황석굴의 특성을 알아보기 전에 그 지리적 배경이 되는 감숙성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
돈황은 중서 문화교류의 중심지가 됨.
◎돈황막고굴의 역사
1. 불교의 전파
기원전 6세기경 인도에서 발생
-서한 말년 불교가 돈황으로 들어옴 → 전국에 퍼짐
-중국과 서역의 문화교류의 중심지, 불교의 성지
-막고굴 처음 시작 : 전진(前秦) 건원 2년(서기366) 사문낙준이 처음으로 하나의 석굴
돈황은 중국의 3대 석굴인 막고굴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실크로드의 중요도시다. 돈황이 중국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한무제 때, 약 2천 3백 년 전 한반도에 한사군을 설치했던 그는 이서영에서 4군을 설치, 돈황을 중심으로 서역지방을 경영했다. 돈황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중심으로 한 서역으로 가
중국 정부가 선진적인 ‘개발’ 개념을 도입한 것인 동시에 수자원의 개발과 보호, 관광산업이 중국의 경제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이미 충분히 인식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중국의 서부에는 지하자원만큼이나 풍부한 관광자원이 산재해 있다. 돈황과 같은 고대의 석굴사원에서부터 현대의 소수민
중국 7대 고도의 하나인 개봉, 낙양이 있다.
- 개봉은 북송의 도읍지로서 크게 번성하였고, 수호지의 무대로도 유명하다.낙양은 기원전 770년부터
역대 9왕조가 도읍을 두었던 고도였으며, 예술의 도시였다.
- 낙양의 용문석굴은 동황의 막고굴, 대동의 운강석굴과 더불어 중국의 3대 석굴의 하나이다